너희들이 식량안보를 아느냐? 
서정홍(시인·한국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 사무국장) 

“미국산 밀이 미국 내 사정으로 갑자기 공급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산
밀을 수입하는 나라마다, 미국이 또 밀 값을 올리기 위한 ‘비겁한
술책’이라고 비난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진행 과정을
봐 가면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 아홉 시 텔레비전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한 말이다. 아나운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반 뉴스처럼 쉽게 말했다. 그러나 잇따른 기후 변동과 냉해로
흉년이 계속 되는 바람에 식량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 뉴스가 나온 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온 나라가 술렁거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제 어디서 밀가루를 사서 빵과 과자를 만들지. 큰일이구먼.” 

“밀가루 남은 양이 며칠 쓸 거밖에 없어. 남은 거 다 쓰고 나면 30년 동안
이어오던 자장면 집도 문을 닫아야겠지.” 

“몇 년 전에도 밀 값을 갑자기 두 배나 올려서 골탕을 먹이더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미국 사람들 믿지 말라더니, 진짜 믿을 게 못되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걱정은 깊어 가고 사회가 불안해졌다. 시장에 있던
국숫집과 만둣집도 문을 닫고, 새로 생긴 상가에 들어선 제과점, 햄버거 가게,
피자 가게, 점심시간이면 발 디딜 틈도 없던 밀면집도 문을 닫았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이름난 과자공장, 라면공장, 빵공장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밀 공급을 중단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수백만 명이 넘었다. 노동자들은 살 길이 없어 날마다 거리에 몰려나와 시위를
했다. 

미 농산물 공급 중단땐 대혼란 

“미국산 밀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미국산 밀을 공급하라.” 

“미국이여, 부시여, 제발 부탁한다. 밀을 공급하라.” 

노동자들이 거리마다 펼침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거리는 온통
시위대들이 길을 막는 바람에 자동차들이 꼼짝 못하고 고물덩어리처럼 서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자꾸 날이 갈수록 먹을 양식이 떨어진 시위대는 식당과
가게를 약탈했다. 나는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고 방에 숨어 있는데, 갑자기 문
여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아, 꿈이었구나’ 꿈이었기에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나는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절을 했다. 절을 하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식량과 무기를 충분히 준비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공이 다시 묻기를, “그 세 가지 가운데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공자는 “무기를
버려라”고 대답했다. 예부터 ‘식량안보’는 ‘군사안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주는 이야기다. 

해마다 나라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 농경지가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고,
가뭄으로 물이 모자라서 애써 심고 가꾼 곡식들이 말라죽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인구는 자꾸 늘어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 발표한 2002년도
‘세계아동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해마다 지구촌에 태어나는 아이는
1억3000만명에 이르지만 질병과 굶어죽는 아이가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또
열 살 이하의 어린이 12억명 가운데 1억5000만명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단다. 

제발 우리농산물 먹자 

현재 우리나라도 75% 남짓 식량을 수입해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만일
농산물을 공급해 주던 미국이나 중국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거나, 자기 나라
이익을 위해서 우리나라에 공급을 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참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왜 살려야 하는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21세기 가장 큰
문제는 식량파동과 환경오염이라고 세계 이름난 학자들이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이 두 가지는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게 된다. 

보기를 들면, 밀 1kg을 여태까지 미국에서 500원을 주고 샀는데, 미국이 흉년이
들어서 밀 1kg을 5000원에 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밀농사를
짓지 않으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미국에서 요구하는 값을 주고 사 먹어야 한다.
그래서 ‘식량전쟁’은 ‘원자폭탄’보다 수 백 배, 수 천 배 더 무서운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인도네시아에선 쌀값이 10배로 뛰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창고에 쌀 재고가 있어서 ‘쌀값폭등’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일 쌀
재고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도 인도네시아처럼 쌀값이 10배쯤
올랐더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굶주림에 떨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하는 것이다. 다른 쓰임새(옷, 신발, 휴대폰, 자동차,
학원비 따위)를 줄여서라도, 우리나라에서 건강하게 자란 우리 농산물을
먹자고. 제발, 제발 부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