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
민주주의란 결국 다수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진로가 결정된다. 그래서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에 발표된 갤럽과 조선일보의 '국민이념성향 조사'는 한국의 앞날을
점치는 데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그냥 일과성 자료로 흘려
보내버리기엔 그 의미가 너무 크다.
우리 국민의 53%가 '가난은 정치나 사회제도가 잘못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런 견해가 2002년에 39.5%에서
2003년에는 48.5%, 그리고 올해는 52.9%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국민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가 31.9%에서
39.2%를 거쳐 올해는 42.8%로 늘어나고 있다.
한편, '체제에 관계없이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의견은 10%에서 21%를 거쳐
2003년에는 31%까지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통일은'
79%에서 지난해 69%를 거쳐 올해는 60%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그 원인이 어떠한가에 관계없이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 가운데 상당 부분을 자신에게서 찾기 보다는 제도나 타인에게서
원인을 찾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같은 시대정신의 변화는 재분배 정책에 대한 욕구를 대폭 증가시키게 될
것이며 그것은 경제영역에서 시장원리에 비해 정치원리의 영향력이 대폭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위의 여론조사 결과는 보통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일이 힘겨워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인 격차의 확대도 이와 같은 여론을 만들어내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특별한 조치 없이 그냥 지금 상태가 계속되면 앞으로도 더욱 악화된 여론이
나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 가면서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성장이 계속되다 보면 다수 국민의 생활수준이 나아질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국가들의 고성장은 한국의 사업환경 악화와 맞물려서 일자리의
해외이전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있다.
최고의 재분배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일자리의 창출이야말로
다수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돈을 거두어
나누는 정책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과 함께 가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효율성이 무척 낮은 방법이다.
그래서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국가경영의 최우선 과제를 두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역동적인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실패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사람들은 점점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체제에 관계없이
통일'이라는 답변이 무려 31%나 나온 것은 의외다.
결점투성이의 시장경제라 해도 그 어떤 사회주의보다는 나은 체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체제에 대한 감사함을 잃어버리기 쉽다.
여기에다 선동가들의 감언이설까지 더해지게 되면 체제의 변질이란 최악의
상황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우려하는 점도 민중주의의 바람이 앞으로 더 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화려한 정치적 수사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 세를 얻게
될 가능성을 걱정하게 된다.
물론 당장 몇년 안에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무시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가진 체제의 약점을 찾아내고 이것을 수선 보수해 나가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보통 사람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이 될 정도까지
경제사정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만약 이런 일들을 게을리하게 되면 결국 이
나라는 가난의 질곡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때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다.
가난의 시대가 오면 여유 있는 계층들은 이 나라를 떠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동성이 증가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같으면 대다수 국민들은 생물학적 조국과 마지막 순간까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유가 있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다시 한번 한국이 최고의 역동성을 가진
국가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저마다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이다. 그때 체제에 대한 믿음도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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