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는 그 자체가 뜻을 가지고 있는 뜻글자다. 그래서 글자의 모습이 곧 뜻을
나타내게 되어 있어 漢字를 통해 옛 文化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런데 그 ‘모습’은 수 천년을 두고 많이도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은 쉬이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지만 최초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甲骨文(갑골문)을 보면
훤히 드러난다.
‘敎育’을 보자. 옛날에는 嚴父慈母(엄부자모)라고 하여 아버지는 엄격하고
어머니는 자상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 엄격한 아버지가 자식의 敎育을
담당했는데 회초리를 들고 때려가면서 가르쳤다. 그것을 뜻하는 글자가 敎다.
즉 아들(子)과 회초리를 든 모습(¤), 그리고 회초리 자국(爻)이 있다. 사실
아버지를 뜻하는 ‘父’자 자체가 바로 회초리를 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한편 ‘育’자는 놀랍게도 엄마가 出産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기른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들 두 글자는 甲骨文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敎育’은 사람을 ‘가르쳐서 길러낸다’는 뜻으로 초기에는
父母가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2500년 전, 孔子가 儒家(유가)를 세워 가르치는 것을 중시하자 180년
뒤에 孟子가 나타나 그 뜻을 받들어 아예 ‘敎育’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人間을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과 다름없게 되며 堯舜(요순)이 聖人(성인)이 되고
盜솮(도척)이 도둑의 우두머리가 된 것도 다 敎育의 차이라고 보았다.
그의 이런 정신은 韓中日 세 나라에 퍼져 세계에서도 類例(유례)없는 敎育熱을
가진 나라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단연 1등이다.
陶公(도공)이 옹기 하나를 만들어도 땀과 정성을 쏟아 부으며 대장꾼이 주발 한
개를 만들어도 수 백 번 풀무질을 해야 한다. ‘陶冶’(도야)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하물며 ‘사람’을 만드는데 있어서랴?
그래서 우리 祖上들은 무엇보다 敎育을 중시하였으며 愼重(신중)에 愼重을
기하였다. ‘十年樹木, 百年樹人.’ 나무는 10년을 내다보고 심고, 사람은 백년
앞을 내다보고 가르치라는 뜻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百年之大計’다. 敎育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장기적인 眼目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 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敎育政策은 朝令暮改(조령모개)를 거듭했다. 일관성 없는 政策도
지금의 붕괴되어 가는 敎育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원전;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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