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지금부터
4년 후까지 한국의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어떤 입법들이
만들어질지가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요즘의 4년이란 무척 긴 시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거 결과에 대해서
초미의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누군들 나라 생각이나 걱정을 하지 않겠는가. 다만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나는 유권자들이 감정이나 일시적인 바람에 좌우되기보다는, 막상
선거를 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믿음과 판단,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미치게 될
나라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치열한 선거전을 통해서 새로이 입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몇가지 당부를
하고 싶다. 아마도 이런 당부는 유권자들이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기준으로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회의원이란 직분이 요구하는 의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입법부의
지도자들은 지방 의회를 대표하는 의원과는 달라야 한다.
다시 말하면 특정 지역을 대표해서 국가의 일을 맡은 사람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이란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서 좀더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한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올바른 세계관을 갖고 국가의 일을 다루어야 한다. 이 시대는 실용의
시대이자 시장의 시대다.
이념의 시대는 가고, 거대담론(巨大談論)의 시대도 가 버렸다. 21세기는
혁명이 아니라 법치와 개량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정치지향에서 경제지향으로,
이념지향에서 실용지향으로 가는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고 그것에 스스로 발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행여 젊은 날 투쟁 철학에 발을 디뎠던 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젊은 날
한때의 추억으로 충분하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투쟁철학으로
무장된 지도자가 아니라 ‘밥먹는 철학’으로 무장된 지도자들이다.
'고별혁명'을 집필한 리저허우와 류짜이푸는 20세기 중국의 경험에서
‘과도한 격정과 부족한 이성’을 가진 지도자들이 끼친 폐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깨부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통쾌하긴 하겠지만, 깨부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커다란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머리가 잘려 나가고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려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차례 반복했지만 매번 조금씩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셋째, 법치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나라의 반석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두가지
체제 밑에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사람들이 만든 어떤 체제든
약점이 없겠는가.
수선하고 보완해 나가야 하지만 법치(the rule of law)를 뒤흔드는 입법(the
rule of legislation)을 경계해야 한다.
목소리 큰 이익집단들의 이익을 반영하다 보면, 결국 성장과 활력의 동력을
상실하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점점 한국 사회가 그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기로 치닫는 로마의 몰락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말기, 젊은 이상주의 지도자인 카라칼라 황제가
무차별적으로 로마 시민권을 주는 제도와 세제 개선으로 로마 몰락에 결정타를
입히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경박하고 짧은 정책에 대해 아쉬움을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그 일을 시작한 애초의 동기는
선의였다. …정책이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도 통찰한 뒤에
생각하고 실시해야 한다. 깊은 통찰과 정반대되는 극에 있는 것이 얕은
생각이다."
넷째, 공직을 사익을 착복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부패하지 않는
정치가들을 미리 알아낼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매사를 신중하게 따지고
하루살이처럼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인생이 길다고 생각하고 살게
되면 지도자들도 부정부패에 빠져들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값어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부패에 발을 디딜 가능성이 낮지 않을까.
우리 모두 인간이기에 기분이나 감정, 개인의 친소 관계와 연줄 등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선택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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