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사등록 2003.01.19(일) 23:25
자살하게 끔 몰고간 회사
검은 리본이 드리워진 그의 사진을 본다. 마치 눈물이 번진 듯한 사진 속의
그의 눈매는 선하다 못해 서글픔으로 가득하다. 쉰 한 살의 노동자 배달호 씨는
20여 년의 노동자 인생을 지난 9일 마감했다. 그는 죽기 전 둘째 딸을 안고
“못난 아빠 용서하라”며 울었다고 한다.
2000년 자산가치 5조원이 넘는 한국중공업은 헐값인 3천여억원에 두산에
매각됐다. 두산중공업은 “노조의 버릇을 고쳐 주겠다”는 회장의 방침에 따라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노동자 1200여명을 정리해고했다. 지난해 노조의 47일간의
파업에 대해서는 용역깡패까지 동원해 파업 대오를 짓밟은 뒤 18명 해고를
포함한 89명 징계, 노조를 상대로 6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와 조합비 가압류,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가압류 등 노조탄압의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노조 교섭위원이었던 배달호씨는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회사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미안한 마음에 해고자들과 구속자들을 찾아다니며
안쓰러워 했던 그는 분신하던 날 아침 5시 집을 나서 1시간 뒤 회사 구내에서
새까맣게 탄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유서에서 “두산이 해도 너무 한다…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라며 두산의 노조 말살정책을 비난했다. 하지만 노조는 거의
무기력하게 와해됐고, 오죽했으면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은 배씨의 빈소를 찾는
일마저도 회사 눈치를 본다고 한다.
아이엠에프 이후 우리 사회는 마치 초기 자본주의 영국처럼 야만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거대자본과 한 편이 되어 노동자들을
생의 벼랑 끝으로 몰아댔다. ‘못난 아빠’ 배씨는 인간의 존엄이 무너져 내린
이 사회의 야만성에 치를 떨다가 고독하게 죽음을 결단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배씨와 같은 무권리 상태의 ‘사람’들에게 아직도 무관심하기만 하다.
파업을 벌였다고 생존의 근거마저 박탈하는 상황은 인권을 부정하고 야만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 야만의 시대를 끝내는 것, 그것이 제2, 제3의
‘배달호’를 낳지 않는 일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2/2003/01/00510003220030119232503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