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설 때에 나오는 말: “난 최선을 다했어!”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최선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최악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라!)
어디에선가 읽어 본 우화(寓話)* 가 하나 있는데….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서, 함께 살아가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결혼식날, 둘은, 서로 서로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후,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만 골라서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속으로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사자는 최선을 다해서 사냥을 했고,
사냥깜의 가장 맛있는 살코기 부위만 골라서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무척 괴로웠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참을성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참아 왔는데… 좀더 참아 보자!’라는 다짐은?
사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라는 선언인 셈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서로의 차이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서로 잘못 듣게 되었는지?
잘못 풀어 놓게 된 것인지?
서로의 이야기는 그만 상대방에게는 ‘헤어지자!’는 것으로 들렸든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할수 없이 헤어지면서, 둘은 똑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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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틀림없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최선(最善)은 오히려 최악(最惡)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최선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최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사랑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 서로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참을성이 많다고 해서,
또 사랑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서로의 ‘같은 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다른 점’이 필요한 것이며,
그 다른 점을, 서로 서로 즐겁게 메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이 솟아 나오는 것 입니다.
그와같은 서로의 차이점과 다른점을,
고치기를 거부하고, 메꾸기를 거부하다가,
결국은 갈라설 수 밖에 없게되는 경우에, 서로 서로 똑같이 하는 말이,
“난 최선을 다 했어!”입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경우의 최선은?
오직 ‘자기의 눈’으로만 본 최선일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오래 갈 수 있는 사랑은?
“최선을 다 한다!”라는, 극한적인 최선의 경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랑하니까 ‘무조건 참아야 된다’는 그 참을성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네! 나의 모든 것을 주네!” 하는 생각 대신에…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外에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상대방을 ‘사랑 外의 눈’으로도 바라 볼 수 있어야만 될 것 입니다.
온갖 사람들이 ‘사랑! 사랑!’하고 떠드는데…
자기의 눈으로만 보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랑 外의 또다른 눈으로도 바라 볼 수 있는 길이,
진정한 사랑을 살리는 길이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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