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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권영길 후보는 '진보의 꽃' 피울 밀알 / 홍세화
권영길 후보는 `진보의 꽃' 피울 밀알 [홍세화]
대한매일
◆진보의 이름으로
나는 권영길을 잘 모른다.몇 차례 파리와 서울에서 만나 대화를 나눠보았지
만 난 아직 그를 잘 모른다.나에게 그는 자기 의견을 주장하기보단 남의 의
견을 주로 듣는 사람이었다.적어도 내가 아는 부분에서 그는 먼저 행하고자
하는 일을 행한 후에 말을 하는 사람이다.산골소년으로 태어나 어려운 청소
년기를 거쳐 노동자들의 대표가 된 사람,내가 아는 대목에서 그는 분단과 전
쟁의 소용돌이가 할퀴고 간 가족의 고통을 성숙으로 승화시킨 몇 안 되는 사
람중의 하나다.
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권영길을 오늘 말하려 하는가? 지금부터 30년 전
,20대 청년이었던 나는 이렇게 자문하며 처연해 한 적이 있었다.“과연 살아
생전에 합법적 진보정당에 참여하여 활동할 날이 올 수 있을까.”라고.
내가 오늘 권영길을 말하려 함은 무엇보다 진보의 이름으로 그를 예우하기
위함이다.특히 기존정당의 후보들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마음껏 홍보할 수
있는 현실에 비해,그는 군소정당의 후보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잘못이다.가령
프랑스의 ‘르몽드’는 96∼97년 겨울의 노동자 대파업 당시 권영길과 가진
인터뷰 기사를 크게 실었다.내가 아는 한 ‘르몽드’에 그만한 비중의 인터
뷰 기사가 실렸던 한국인은 김대중 대통령뿐이다.
그리하여,진보의 이름으로 권영길을 말한다.그것은 곧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말 없이 말하는 그
파리에서 처음 만난 때부터 그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한국노동운동
의 기관차를 몰던 때에도 그는 예상외로 수줍음 많고,과묵한 사람이었다.상
대방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놓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말많은 조직’을
이끄는 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을 보았다.96∼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여 총파업을 주도한 강철의 노동운동가는 도무지 찾을 수 없고
,앞자리에는 한 신중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말의 향연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달변인 사람들이 넘쳐나는 오늘날,권영길의 과묵은 더욱 이채로웠다.
술자리에서 몇 순배의 술이 돌아가도 그는 말이 많아지지 않았다.다만,노동
현안에 대해선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이를테면 그의 말없음은 해
야 할 말은 꼭 하고 마는,단호함을 위한 것이었다.
97년 대선에 관해 누군가 입을 열었을 때 그는 몹시도 죄스러운 표정을 역
력히 지었다.민주노총이라는 거대조직의 선거참여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결과
를 낳았다는 자책이 그를 부끄럽게 하는 것 같았다.그날 그는 말이 없었으되
무표정하지는 않았다.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친 사
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의 공유였을까.백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한 가지 표정으로 나타낼 수 있는 그는,말 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정치
그의 아버지는 빨치산이다.아버지에 대한 몇 가지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아버지의 삶과 생애에 대해 이웃과 친지들의 증언으로 대략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그러나 헤어진 아버지를 몇 년만에 주검으로 마주한 일은 어린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으로 각인되어 있다.‘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던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빨갱이’였다니….
농민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의식을 키우던 고등학생 때에서야 비로소 아
버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그는 말한다.광신적인 반공주의국가에서 좌익의
지아비를 둔 어머니는 행여 자식들의 앞길에 먹구름이 낄까 아직도 입을 닫
는다며 말을 흐렸다.어느새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가 정치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은 이런 가
족사뿐만 아니라 어려웠던 학창시절에 힘입은 바 크다.돈이 없어 며칠을 굶
기도 하고,잘 곳이 없이 노숙을 하기도 했던 어린 권영길에게 세상은 한번도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세상의 비참을 몸소 체험한 그가 다른 사람들의 비참
을 묵과할 수 없었으리라.
정치는 ‘인격적 권리의 창출’이라고 믿는 그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
들만을 위한 정치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날이 올까.아마 그건 그리 중요
하지 않을지 모른다.본디 약한 이웃들을 위한 정치를 꿈꾸는 자에게 세상의
강고한 벽은 이미 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 많은 사람
그가 고등학교 때 이미 야학을 결성하여 나름의 사회참여를 시작했다는 사
실에서,언론노련 시절 절대 술을 먹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를 뿌리치고 괴로
워하는 동료들을 위해 함께 밤새 술자리를 지킨 일에서,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슴 아파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쓰는 면에서 그는 분명 정이 많은 사
람이다.그의 다정(多情)이 이 사회에서 슬픔과 분노를 잉태시켰음을 여기서
다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45살이라는 나이에 늦깎이 노동운동가가 된 것도,언론노련과 민주노총
을 거쳐 마침내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가 된 이유도 결국은 서러운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안쓰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그
연민 위에서만 이념과 사상이 제대로 꽃필 수 있다.그동안 우리는 인간에 대
한 애정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이념과 사상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그의 맘
씀씀이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미련한 사람
권영길은 미련하다.97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그가 또다시 대선 출마를 하
고 나선 것이다.오늘의 상황은 97년과 많이 다르지만 또한 어떤 점에선 같다
.
6·13 지방선거에서 일약 제3당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다른 점이
라면,한나라당과 특정 유력신문으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 헤게모니를 쥔 채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비단 서구사회를 비교대상으로 삼지 않더
라도 한국사회의 사회적 진보는 매우 더디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친 브라질에서
좌파후보 룰라의 당선은 우리 진보정당운동이 헤쳐나가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올 대선에서 권영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승부가 예견된 싸움을 굳이 하려드는 그는 미련한 사람이다.그러나 그
의 미련함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다.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키고야 마는 사
람들은 모두 승산이 없다고 믿었던 대상과 지난하게 투쟁해온 ‘미련한 사람
들’이 아니던가.병든 시대를 온몸으로 아파하며 맞서 싸우는 권영길,그는
올해도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다.그러나 분명 그 싸움은 하나의 밀알이 되어
이 땅에 진보의 꽃을 피울 것이다.
◆보론-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뉜 계급사회다.이것은 시민적 상식이
다.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이 존재한다면 노동자의 이익을 대
변하는 정당도 존재해야 한다.그것이 공화국이요,민주주의다.그러나 지금까
지 한국사회에선 노동자의 정당이 없었다.유권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
동자와 농민,그리고 서민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은 없었던 것
이다.한국사회를 지배한 레드 콤플렉스가 ‘노동자’가 ‘빨갱이 예비군’이
나 되는 양 기피하도록 한 탓이 크다.그러나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
나 노동자다.
민주노동당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계를 꿈꾼다.또한 민주노
동당은 차이가 차별을 낳는 세상을 반대한다.민주노동당은 돈이 없어서 병원
에 갈 수 없는 사회를,돈이 없어서 대학에 갈 수 없는 사회를 반대한다.
당신은 노동자인가.그럼 당신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당신은 농
민이고 서민인가.당신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당신은 당신이 사
회경제적 처지에 걸맞은 정치의식을 가져야 한다.사회구성원들 각자가 자신
의 사회경제적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정당을 선택할 수 있을
때 한국사회는 비로소 하나의 ‘사회’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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