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유행되고 있다는,
소위 그 ‘괘씸罪’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자.
‘괘씸하게…’ 라는 말은? 아마도 우리에게만 있는 말이 아닐까?
(과연, 일본어나 중국어에 그와 똑같은 의미의 말이 있을까? 글쎄…)
아직도, 그 말이 자연스럽게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그 사회는 평등 사회가 아니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왜냐하면?
‘괘씸하게도’라는 말은?
계급사회나 주종(主從)이 있는 종적(從的)인 사회에서만
통용 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마치 상놈이 양반에게 기어 오른다든가…
종놈이 주인에게 기어 오르는 경우 처럼…
上下의 위치가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는,
대등하지 못한 관계에서나, 통용 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떠드는 그 ‘학벌을 없애자!’라는 주장이나...
또는, 소위 그 ‘학벌없는 사람이 출세한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부여하고, 화제가 되는 이유도…
바로 그 나라에는 그만치 ‘학벌에 의한 차별’이 많고,
또한 모든 면에서 ‘대등한 인격체로 조차 보아 주기 않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타 날 수 있는 현상일 뿐이다!
만약 말이다, 학벌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 평등사회라면?
‘학벌 없는 사람이 출세를 하든… 대통령이 되든…
배우지 못한 여자가 영부인이 되든….’
그러한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과연? 제대로 된 평등사회라면?
무엇 때문에, 그런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하겠는가?
무엇 때문에, “학벌없는 사람을 뽑자!”라는,
이상한 캠페인 까지 생길 수 있겠는가?]
서양의 언어에서, ‘괘씸하게도…’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다.
예를 들어서,
괘씸하다’라는 말과, 비슷한 말을 英語에서 찾아 보았자…
고작, Insolent (무례하다) Treacherous( 배반하는) Unfaithful (불충실한)
Improper (온당치 못한) Unappreciative (감사를 모르는) 정도일 뿐인데…
우리의 ‘괘씸하게도’라는 말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미국에서, 종업원이 주인에게, ‘월급을 좀 올려 달라!’고 하면?
주인은 이러 이러한 이유를 대면서… ‘지금은 올려 줄 수 없다!’
라고 할 것이다. 그 이유를 종업원이 받아 들일 수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이고, 있을려면 그냥 있으면 되는 것인데…
그와같은 일을 가지고서, 주인과 종업원 사이에,
과연 ‘괘씸하게도’ 라는 생각에서, ‘어디 두고 보자!’라고…
‘사람까지 미워하게’ 되는 일은 아에 없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의 경우라고 치면?
과연 어떻게 다를까?
아마도…전혀 다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에게는…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도…
“괘씸해서… 해 줄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과연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우리에게‘괘씸罪’라는 것이 있듯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도…
결국은, 똑같은 맥락에서 나오게 된 말인 셈이다.
요사이 농협의 개혁은 중앙회가 주관해야지 지역농협이
왈가왈부 하는 것은 그 주장의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그(지역농협 주제에
개혁을 말하는 것은 중앙회에 대한 도전, 하극상이라고 생각하여) 태도가
괘씸해서 그 주장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않고(과거에는 중앙회 정기 감사시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수감태도가 불량하다고 했다)
개혁실무자들은 지역농협의 개혁요구안은 괘씸하게 생각하며 귀담아 듣고
개혁에 참고하려 하지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그러나 개혁하여야 할 것은 직접 겪은 실무자들이 제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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