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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자료마당 > 성명서/보도자료
 
작성일 : 08-07-01 10:52
[보도] 2006 7 펌> 경향신문. 미국 신자유주의는 광주항쟁후 한국에 뿌리
 글쓴이 : 부산본부1
조회 : 978  
“FTA근간 美신자유주의, 광주항쟁후 한국에 뿌리”
입력: 2006년 07월 09일 18:42:27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징되는 미국 신자유주의 체제가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 광주항쟁 때부터입니다.” 한국에 신자유주의 공세가 몰아치기 시작한 시기를 80년 광주항쟁 때로 앞당겨 봐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외국 학자로부터 제기됐다. ‘신좌파의 상상력’ ‘정치의 전복’ 등의 저자로 국내에도 알려진 조지 카치아피카스 미국 웬트워스공대 교수는 그동안 민중항쟁으로서의 광주를 연구해오던 중 한·미관계의 특성과 관련한 뜻밖의 수확을 올렸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지난 7일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미 정부가 5·18 연구소의 요청에 따라 공개한 3,600여쪽의 자료(GDMM)와 당시 미 대사, 주한미군 사령관 등의 회고록 등을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광주항쟁 당시 미국이 민주주의 세력을 지원하지 않고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전두환에게 손을 들어준 사실에 주목해 얻은 결론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지지한 것에 대해 제2의 이란 또는 베트남을 원치 않았다는 안보 관점에서만 해석해 왔다”며 “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 공개된 미측 문서들을 검토한 결과 미국은 한국의 안보 불안보다 경제적 불안을 걱정한 측면이 더 커보인다”고 말했다.

이 문서들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북한을 전혀 위협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또 79년 이란에서 일어난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이 광주에서 재연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돼 있다. 광주항쟁 당시 성조기를 부착한 미 정부 차량이 광주 시내를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며 시민군을 이끌었던 윤상원씨는 오히려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미 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미국에 대한 적대감도 적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적 이해가 더 큰 걱정이었다. 미국측 투자자들이 한국을 급격히 떠나려는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광주항쟁 직전 글라이스틴 대사가 미 상공회의소 잡지에 “중앙의 강력한 통제에 의한 박정희식 발전모델이 아니라 더 많은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는 점진적 시장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글을 기고한 사실에 주목했다. 또 항쟁 직후 존 무어 미 수출입은행 총재가 남한 핵발전소와 지하철공사를 미국 기업이 수주받도록 하기 위해 방한한 사실도 강조했다.


1981년 미국을 공식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미 정부는 국가 발전모델을 추진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자 비로소 한국 시장 자유화를 본격 추진할 호기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내 미국의 시장 개방 공세가 본격 시작됐다는 점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80년 한해 미국은 한국에 캘리포니아산 쌀을 t당 100달러씩 올려 팔며 6천4백만달러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 광주항쟁 직후 6개월간 레이건 정부와 긴밀한 협조 관계였던 전두환은 경제관료 230여명, 한국은행 관료 431명을 해고하는 등 비효율적인 국가주도 경제 부문에 대한 청산도 단행했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미국은 최근 이라크전, 테러와의 전쟁 등에서도 보듯 자국의 경제 이해를 밀어붙이기 위해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면서 “73년 칠레의 아옌데 정부에서 처음 시작된 미국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80년 한국에서 비슷하게 적용된 데 이어 이제는 FTA 협상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한·미관계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지만 아직 이론적 엄밀성을 더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날 포럼에 토론자로 참여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전두환 정권 이후 한국의 시장개방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성격보다 박정희의 발전국가적 성격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박정희의 발전국가 모델이 신자유주의적 모델로 바뀐 시점을 97년 외환위기 즈음으로 파악해온 국내 학계의 일반적 견해에 비춰본다면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주장은 이 시점을 17년이나 앞당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