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85호크레인 앞 희망시국선언…'조남호 국회출석 명령 범국민서명운동'
“소금꽃, 김진숙을 지킵시다”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이 거친 곳에서도 희망은 피어납니다“
“절망은 희망을 결코 꺾을 수 없습니다”
시민사회·종교·학계·정당·언론·법조·문화 등 각계각층의 원로와 주요 인사들이 24일 ‘희망 시국회의 200’이라는 이름으로 영도조선소 앞에 모였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오른 지 200일째 되는 날이다.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퇴휴 스님(실천불교전국승가회 대표), 김상근 목사(6.15남측위 상임대표), 정동영 민주당 의원 등 각계 인사 200여 명과 부산시민 등 400여 명은 이날 오후 5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맞은편에서 ‘생명, 평화 그리고 소통을 위한 희망시국회의’를 열고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정동영·원혜영·이종걸·조배숙·홍영표 의원 등 5명의 민주당 의원이 이곳을 찾았고,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공성경 창조한국당 대표 등도 함께 자리했다. 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에서도 각각 김세균 서울대 교수, 김선수 민변 회장, 김기식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등이 시국선언에 힘을 보탰다. 부산지역 야 4당 시당위원장들도 시국회의에 동참했다. ‘시국선언 200’에 명단을 올린 참여자는 모두 279명에 달한다.
희망시국회의 “85호 크레인은 대한민국 양심의 현주소”.. “한진중공업 인권유린 중단” 한목소리
‘통일의 꽃’ 임수경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85호 크레인 농성은 대한민국 양심의 현주소”라며 한목소리로 한진중공업 사측과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먼저 무대에 오른 함세웅 신부는 속죄의 발언부터 전했다. 함 신부는 “7개월 동안 농성을 해왔는데 언론을 통해서 소식을 전해들었다”며 “오기 전 정화기도를 드리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고백했다. 함 신부는 “우리에게 김진숙은 희망의 표상”이라며 “무모한 정권을 종식시키고 무리한 기업을 회개하게 하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도 “전국 곳곳에서 절망하고 있을 노동자에게 오늘 시국회의가 큰 힘이 될 것”이라며 “85호 크레인을 보며 총연맹 대표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영훈 위원장은 ”85호 크레인은 무모한 MB 정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자본의 이윤이 우선되고, 무력의 진압이 있고, 경찰이 자본의 사병이 되어 자발적 연대를 외부세력 운운하고 탄압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식 12일째인 그는 “대한문 앞에 늘어가는 텐트촌을 보며 희망을 느끼고 있다”면서 “민주노총의 모든 것을 걸고 이번 투쟁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비상한 각오를 밝혔다.
국회청문회를 거부하고 해외에 체류 중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김상근 목사는 “조남호 회장이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은 노동자들을 돌로 내리친 것과 같다”며 “조 회장은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다. 김진숙은 당신의 가족이고 식구”라고 비판했다.
김영훈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단식 12일째인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영도조선소는 흑자기업”이라며 “이 알짜배기 기업을 수주 0건 운운하며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겠다면 사회에 헌납하라”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노회찬 고문은 “국회청문회를 여는 것으론 모자란다”라면서 “조남호 회장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도 깡그리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노 고문은 “대한민국의 양심이 200일째 85호 크레인에 매달려있다”며 “저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때야 말고 대한민국의 정의와 양심도 같이 내려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회찬 고문과 같이 단식농성에 들어간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진보정치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를 던졌다. 심상정 고문은 “인권이 참혹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85호 크레인은 대한민국의 양심이 위기에 처한 현장”이라며 “이명박 정부 아래 백척간두에 선 노동 현실을 웅변하고 있지만, 진보정치가 힘이 부족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성찰하는 마음으로 단식에 임하고 있다”며 “굳건한 연대로 더욱 분발하겠다”고 자신의 다짐을 전했다.
부산역 광장에서 희망 단식농성 중인 윤택근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은 “부산시장과 고용노동청장 등이 크레인 농성을 중단하라고 했다”며 “그들은 진짜 외부세력이 누구인지 부산경제를 말아먹는 자들이 누구인지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죽음의 크레인을 희망의 크레인 만들고자 오른 만큼 여기 모인 선배들과 각계 인사들이 조금만 더 연대와 힘을 보태달라. 그러면 이길 수 있다”고 호소했다.
정치권 “조남호 국회 반드시 불러낸다”..조승수 “10개 정당 대표 회담 열자”
85호 크레인 고공농성 200일째에 접어들면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시국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때때로 웃거나 참여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와 아이들이 무대 위에 올라 85호 크레인을 향해 노래를 부르자 시국회의 분위기가 더 달아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김 지도위원은 크레인 위에서 가대위 아이들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손을 흔들기도. 사회를 보던 임수경 씨의 즉석제안에 아이들이 ‘이모 힘내세요’라는 노래로 이에 화답하자 진지하던 시국회의 행사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야권은 ‘한진중공업 사태 국회청문회’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을 약속했다. 시국회의 200을 제안한 정동영 의원은 부산으로 오기 전 쓰러진 전태일 열사의 모친인 이소선 여사를 만나고 왔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정 의원은 “병원을 들러 어머니께 김진숙을 살리자는 시국회의에 다녀오겠다고 하니 어깨가 움찔하셨다”며 “어머니는 쓰러지기 전 하신 것이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편지를 쓰신 것인데 절대 죽어서는 안된다. 김진숙은 소중한 사람이고 꼭 살아서 싸워야한다고 하셨다”라고 소식을 전했다.
정 의원은 “두 여인을 지키기 위해 오늘 우리는 모였다”며 “두 여인을 지키지 못한다면 역사의 부끄러운 자로 남을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국회 청문회가 열리면 한진중공업 사태는 해결되게 되어 있다”면서 “한 달 내내 해외로 도피해있는 조남호 회장을 청문회로 불러내기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들어가자”고 제안을 던졌다.
홍영표 국회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도 “악덕기업주 조남호를 국회에 불러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한나라당 때문”이라며 “한나라당 간사가 2, 3일 전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고 분개했다. 홍 의원은 “청문회를 방해하는 한나라당은 공정사회를 외칠 자격이 없다”며 “한진 조남호 회장을 국회에 불러내지 못한다면 정치는 죽은 것”이라고 격앙되게 말했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근로기준법을 고쳐서라도 정리해고가 기업의 칼로 쓰이지 않도록 국회가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김 지도위원이 세 번의 계절이 바뀌도록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면서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 저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조남호 회장의 국회청문회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말했다.
200일 고공농성 김진숙 지도위원 “이 거친 곳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이날 자리가 시국회의인 만큼 새로운 제안도 즉석에서 나왔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여야를 비롯한 원내외 정당의 회담을 제안했다. 30일 희망버스 행사 전 10개 여야정당이 한자리에 만나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조 대표는 “10개 원내, 원외 정당 대표가 30일 희망버스 전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한진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열자”며 “여당이 불참하면 야당이 중심이 되어 회담을 하고 실질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85호 크레인이 마주 보이는 신도브래뉴 아파트 앞에서 5일째 단식농성 중인 김비오 민주당 영도구지역위원장은 민주당이 의원지원단을 구성해 1명씩 한진중공업 앞을 지켜야한다고 민주당 중앙당에 주장했다. 김비오 위원장은 “김 지도위원의 안전이 매일 위협받고 있다”며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의원지원단을 구성해 매일 한 분씩 이곳을 지키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시국회의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마무리됐다. 각계 인사 279명은 “한진중공업 문제를 둘러싼 단절을 뚫기 위해 이 시대 양심과 지성의 대표들이 나섰다”며 “200일째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85호 사수대 박성호·박영제·신동순·정홍형이 우리와 같은 땅을 밟고, 잠을 잘 수 있는 날을 앞당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시국선언 참가자들은 △부당한 해고 철회, 장치 마련 △경찰의 평화적 집회 보장, 용역폭력 중단 △한나라당 청문회 수용과 조남호 회장 국회출석을 명령하는 범국민 서명운동 등을 만들어가기로 결의했다. 마지막으로 선언 참가자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권과 재벌의 벽을 넘어야 할 때”라며 “김진숙을 지키고 살려 희망꽃을 피우자”고 선포했다.
고공농성 200일째를 맞은 김진숙 지도위원은 휴대전화 연결을 통해 이날 시국회의 결과에 화답했다. 김 지도위원은 “스물 여섯에 해고되어서 반평생을 해고자로 살았는데 이런 아픔을 동료와 동생들에게 다시 물려줄 수는 없었다”며 “불과 일 년 남짓한 사이에 3천 명이 쫓겨난 이 공장에서 더이상 잃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절망은 결코 희망을 꺾을 수 없다던 그는 이어 “100일 되는 날 심은 방울토마토가 오늘 수확됐는데 이 거친 곳에서도 희망은 그렇게 피어난다”며 “잘 지키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영도주민자치협의회, 희망버스 규탄 기자회견.. 시국회의 참가자와 마찰 빚어
한편, 시국회의가 열리는 동안 85호 크레인 쪽 담 아래에서 영도구 주민자치협의회 소속 40여 명이 ‘3차 희망버스 규탄’ 기자회견을 열면서 소란을 빚었다.
이들은 ‘영도구민 불편 주는 3차 희망버스 반대한다’, ‘정치권 등 외부세력 개입 중단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과 ‘절망의 버스, 폭력버스가 희망버스라꼬’라고 적힌 알림판을 들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동안 주최 측은 참가자를 향해 몇 번에 걸쳐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요구했지만,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아 구호만 30여 분 가까이 외쳐야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지난번에 와서 xxx을 아무 데나 싸더라”며 막말 비난을 서슴지 않아 이에 항의하는 시국회의 참가자들과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부산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영도구청이 3차 희망버스 반대여론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인데 저건 너무하지 않느냐”며 “저런 식의 관제데모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권혁·박성윤 영도구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영도구청은 15일과 21일 11개 동 주민자치센터 행정담당 등에게 ‘3차 희망버스 반대 현수막’ 문안, 동별 게첨, 탄원서 할당 등의 내용을 내부망을 통해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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