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 제주 4.3 민중항쟁. 아름다운 섬으로만 알고 있던 제주도, 그 아픔의 역사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노조는 지난 3월 30일~4월 1일, 2박 3일간 제주 4.3 민중항쟁 정신계승 전국농협노조 역사기행을 진행했습니다. 경인본부, 전북본부, 대경본부 등 곳곳에서 조합원 동지들과 가족 70여명이 참석해, 아직 끝나지 않은 외로운 남도의 투쟁에 함께 했습니다.
1948년 4월 3일로부터 9년여의 죽고 죽이는 학살극. 몇 명의 민간인이 죽어나갔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그 비극의 흔적이 아직도 섬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4.3 항쟁에 대한 제대로 된 조명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4.3 평화공원 관람실 입구에 들어서면 아무런 이름도, 문장도 새겨지지 않은 ‘백비’가 누워있습니다. 봉기, 항쟁, 사건, 사태, 폭동 등등. 4.3을 일컫는 수많은 이름 중 여전히 어느 것으로도 4.3의 의미를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간 곳은‘북촌 애기무덤’, 4.3 당시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희생을 가져온 북촌리 학살사건의 현장. 옴팡밭과 서쪽 너븐숭이 일대 등으로 주민들을 강제로 끌고가 총살, 당시 412명이 희생됐고 300여채의 가옥이 잿더미가 되었지만 역사 속에 숨겨지다 소설가 현기영의 소설‘순이삼촌’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바로‘순이삼촌’ 문학비가 서있는 옴팡밭과 인근의 북촌초등학교가 소설의 배경이 됐던 북촌학살의 장소입니다.
이어 4.3 평화공원에 들러, 4.3 민중항쟁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제주 해군기지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로 이동해 노동자평화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둘째날, 첫 일정은 송악산 진지동굴에서 시작했습니다.
송악산 해안가에 만들어진 진지동굴은 근대문화유산 제 3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은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하여 제주도를 결사 항전의 군사기지로 삼았습니다. 송악산 해안 진지동굴는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미군 함대를 향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입니다.
섯알오름 학살터 및 일본군비행장으로 이동했습니다. 2차 대전 말기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제주도 전체를 군사 요새화한 일제는 이 섯알오름에 전쟁을 위한 탄약고를 축조하였고, 그들이 패망하여 떠나면서 폭파시켜 버린 까닭에 큰 웅덩이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 음력 7월 7일 새벽, 버려진 이 탄약고 터에서 193명의 양민이 군경 토벌대에 의해 학살되었습니다. 종결된 것으로 여겨졌던 4.3의 피바람이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또 다시 불어 닥쳤던 것입니다. 좌익분자를 사전에 격리,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된 '예비 검속'은 무고한 양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군이 만든 공군기지 알뜨르 비행장, 그리고 항공기의 정비, 점검을 위한 부대시설을 보유하고 기체를 수용할 수 있도록 건축된 격납고 시설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동광리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무장대의 근거지에 가까웠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무장대의 왕래가 빈번했던 이 마을은 1948년 11월 14일 마을 유지 9명이 학살된 것을 비롯하여 11월 21일 소개시 무차별 학살과 방화로 주민의 상당수가 죽고 마을도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집요한 토벌과 학살을 피해 주민들은 1948년 겨울 동안 오름과 굴을 전전해 다니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죽거나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특히 120여 명의 주민들이 동광리에서 서쪽으로 2.5㎞에 위치한 큰넓궤에서 50∼60일 동안 숨어 지내다가 발각되어, 1948년 12월 24일 정방폭포 근처에서 총살되었습니다. 이 곳은 지금까지도 곳곳이 누구의 땅인지 확인되지 않아 여전히 버려져있는 집터, 밭터가 존재했습니다.
정방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곳이 살인훈련 장소였다니... 설명을 듣던 우리 동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4.3 당시 남제주군에서는 가장 큰 학살터였습니다. 토벌대는 기암절벽의 폭포수와 부근 절벽 소낭 머리에서 ‘살인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전주와 수목에 손발이 묶인 양민들을 상대로 사격 연습을 하거나 장검 돌격 연습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시체들이 바다로 떠내려가는 바람에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1년이 지난 후 원혼들을 불러다가 마을 근처에 봉분만 만들어 놓았는데 사람들은 이를 '헛묘'라 부릅니다.
아름다운 표선 백사장 역시 4.3의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습니다. 1948년 초토화 작전 이후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주로 표선면 관내의 중산간 마을 출신들이었습니다.
마지막날은 제주 올레길 1코스를 걷고 성산포로 갔습니다. 성산포 터진목도 4.3사건 당시 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었던 곳입니다. 성산 터진목에도 위령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전체 일정을 모두 마친 동지들은 이번 4.3 기행을 통해 알게 된 아픔의 역사를 잊지 말고, 이후 투쟁 속에 더 힘있게 함께 하기로 마음 모았습니다.
참석한 동지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마무리 합니다.
구리분회 안창익 분회장의 부인.“교과서에 단 몇자로 다뤄지는 4.3이지만 이번 기행에 참석한 우리 아이들이 자라며 제대로 인식하고 기억한다면 4.3의 아픔이 그냥 묻히지 않을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니 더 의미있었습니다”
구리분회 강정구 사무국장 아들.“제주도에는 아름다운 것만 있는줄 알았는데 4.3 같은 아픈 역사가 숨겨있다는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행내내 즐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상주분회 한점란 여성부장.“정방폭포에 대한 이야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너무 끔찍했어요. 그냥 관광지로만 알고 오고갔던 제주도 인데, 이런 슬픈 역사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나마도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게 아닐까요.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용인분회 엄기형 대의원. “ 4.3 역사...정말 비극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자체만으로도 울분을 토하게 됩니다. 4.3의 역사적 배경을 듣고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의 희생을 알게되니, 더 분노하게 되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제대로 진상규명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