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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열사의 묘소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을 찾은 생전의 이소선 어머니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고(故)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1400만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가 끝내 운명하셨다. 이소선 어머니는 지난 7월 18일 밤 자택에서 정신을 잃고 심장과 호흡이 멈춰 급히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이후 서울대병원에서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고 집 근처 한일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 오다 3일 오전 8시 50분께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살아있다면, 그리고 40년이란 세월동안 마음이 안 바뀌었으면 죽으나 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했겠지. 비정규직과 함께 싸웠을 거야. 다 함께 해야 한다고 죽기 전에도 말했으니 말이지. 태일이가 이렇게 말했어. 자기가 죽으면 벽에
조그만 창구멍 하나가 뚫리는 거라면서 빛이 조금 들어오면 그거 보고 노동자들이 하나가 돼서 싸우고 권리를 찾으면 점점 그 창구멍이 커진다는
거야. 그 창구멍이 활짝 열리게 함께 싸워야 한다는 거지. 그게 점점 넓어지면 노동자들은 싸우지 말라고 해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거라고.
근데 지금 창구멍이 있나 모르겠어. 다들 자기 살기만 바쁘지.” -이소선 어머니 생전 인터뷰 중
이소선 어머니는 1970년 11월 13일 아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투쟁 이후 민주화 투사로, 노동자의 어머니로, 노동운동가로
각종 투쟁현장에서 노동자 민중과 투쟁해 왔다. 이소선 어머니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차려졌다.
3일 오전, 고(故)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영면 소식에 애도 행렬이 줄을 잇는 가운데 전태일재단은
각계각층과 함께 장례절차를 준비중이다.
이소선 어머니 빈소는 3일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차려진 가운데
오후 4시부터 조문이 시작됐다. 박계현 장례 대변인(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은 “장례의 방식과 절차 등은 3일 저녁 11시에 유족과 전태일 열사의
친구들, 그리고 전태일 열사 및 이소선 어머니와 함께 했던 각계각층 뜻을 모아 4일 오후 3시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소선 어머니의 죽음이 알려지자 각계에선 어머니의 명복을 비는 논평이 발표됐다. 민주노동당은 “故 이소선 어머니는 노동자의 영원한
벗 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거 이후 40년동안 살아있는 '전태일'이 되어, 인간답게 살고자 피흘리며 싸우는 노동자들을 일생동안 위로해주셨다”며
“영원히 살아 있는 전태일 열사의 자리 곁에 故 이소선 어머니도 영원히 함께 계실것이다”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진보신당도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다가신 이소선 여사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하며 “병마와 싸우시면서도 2차 희망버스를 타고
'나도 크레인에 김진숙과 같이 있겠다'며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실 정도로 늘 깨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이소선 여사 생전 모습을
전했다.
고(故) 이소선 어머니는 지난 7월 18일 심장 박동이 멎어서 쓰러져 48일여 동안 의식을 찾지 못했다. 의식이 회복된 뒤에는
85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걱정하며 희망버스에 함께하고 싶은 의지를 내보여왔다.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영상편지를 통해 “살아서
투쟁해야지. 죽으면 안된다”고 간절히 호소하기도 했다. 이소선 어머니 별세소식을 접한 김진숙 지도위원은 트위터를 통해"아! 어머니!!"라는 짧은
글을 남기며 심정을 전했다.
민주당도 “아들의 뒤를 이어 ‘노동자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사회,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쳐
오셨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이 땅의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더욱 힘쓸 것이다”고 전하며 애도 행렬에
동참했다.
누리꾼들도 트위터를 통해 애도를 남겼다. 트위터 이용자 'sk0926'는 “재야운동의 대모,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께서
별세하셨습니다.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수차례 구속, 옥살이, 수배생활을 마다하지 않은 여사님 이제 그리운 아들의 품으로 가셔서 지나간
무거운 짐을 털고 편히 쉬세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트위터를 통해 “이소선 어머님께서 전태일
열사 40주기에 남기신 말씀, '노동자는 하나다. 땀흘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진리, 잊지 않겠습니다. 고우신
어머님, 고마운 어머님, 이제는 편히 쉬소서”라며 애도 행렬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