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을 세웠다. 공장 앞 대로를 점거하고 시트공장으로 몰려갔다.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고 방패로 폭력을 가하며 이들을 막아서봤지만 노동자들의 기세는 거셌다.

현대차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가 ‘1, 2공장 파업’ 방침을 내렸다. 이날 오후 1시를 기해 베르나, 엑센트 등을 생산하는 1공장 생산라인을 멈추고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16일 새벽 2시, 8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싼타페, 아반떼 등을 생산하는 2공장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리를 비워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생산량이 평소 50%를 밑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800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은 29명의 동료 노동자들이 관리직과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극렬한 폭행을 당하면서 촉발됐다. 관리직과 용역업체 직원들은 무방비상태인 노동자들에게 볼트와 프레임 등 철제 부품을 마구 집어던지며 폭력을 가했고 9명이 부상 당했다. 머리가 깨지고 거동을 못하는 중상자까지 발생했다.




현대자동차 공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9명의 노동자들은 시트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차 공장에서 현대차 관리직에게 작업 지시를 받고 있지만 현대차 소속은 아니다. 파견직 노동자들인 것. 이들은 최근 황당한 통보를 듣게 됐다. 회사 사장이 바뀐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속해 있던 ‘동성기업’이 문을 닫고 ‘청문기업’이 노동자들을 인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사장이라고 나타났다.

‘청문기업’은 이들에게 회사가 바뀌었으니 고용계약을 새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조건은 달라진 게 없다. 다만, ‘노조를 탈퇴하라’는 압박이 가해졌다는 게 노동자들의 전언. ‘동성’ 소속이었던 노동자들은 총 50명이었다. 이들 중 29명이 노조 탈퇴 압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청문기업’과 고용계약서를 새로 쓰는 대신 현대자동차에 직접 고용하라고 촉구하기 위해 점거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그리고 15일 새벽 5시 30분, 이들은 경찰과 사측의 경계를 피해 시트공장에 잠입,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점거농성이 시작되자 사측의 대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공장에 들어선 이들에게 볼트와 철제 부품들을 던지며 폭행한 것이다.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는 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사지가 들려 끌려 나왔고, 경찰에 넘겨졌다. 이들을 넘겨받은 경찰은 응급조치도 없이 연행했다. 노동자들이 강하게 저항했지만 사측은 시트 공장 앞벽을 뚫어 자재를 투입해 공장을 돌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사태는 급격히 확산됐다. 29명의 투쟁이 800명의 투쟁으로 번져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동성기업’에서 ‘청문기업’으로 업체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차는 지난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정상적인 도급계약이 아니라 불법 파견업체’라는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이후 울산과 전주, 아산 등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격히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노동조합의 힘은 커져갔고 회사도 이들의 힘을 무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차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들을 ‘현대차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현대차는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연이은 ‘불법파견’ 판결에도 “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며 직접 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헌법소원’까지 내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29명의 노동자들이 느닷없이 ‘해고’ 위기에 몰렸다. 대법원 판결을 현대차에 적용할 경우 이들은 조만간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업체인 ‘청문기업’이 고용하지 않으면 이들은 꼼짝없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새로운 고용조건은 ‘노조탈퇴’였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정규직화를 회피려는 현대차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비정규직들이 급격히 노조에 가입하고 있어, 현대차가 ‘노조에 가입하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메시지를 노동자들에게 보내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내하청 업체의 계약과 퇴출은 전적으로 현대차의 뜻에 따라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차는 이미 아산공장에서 사내하청 업체를 교체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조탈퇴 압력을 가한 경험이 있다고 금속노조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노조 무력화와 직접 고용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에 고심하던 현대차가 시범케이스로 동성기업을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현대차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고용 직전에 와 있다’는 인식이 높다. 여기서 주저앉아버리면 ‘정규직’이라는 그들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29명의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끌려 나오는 광경을 보고 즉각적으로 반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차가 ‘잘못 건드린 셈’이다. 게다가 이미 8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조로 결속된 상황이어서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다.

투쟁은 울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현대차 전주공장과 아산공장 비정규직지회는 15일부터 평일 잔업과 주말(20일) 특근을 거부했다. 16일에는 3개 공장 비정규직지회가 공동 임원단 회의를 열어 향후 공동투쟁의 구체적 계획을 결정할 예정이다.

금속노조 역시 16일 상집회의를 긴급하게 열어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 3개 비정규직지회가 함께 투쟁할 계획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를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대응도 빠르다. 그동안 지역대책위를 만들어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해 온 이들은 이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200명이 넘는 인원이 투쟁에 동참했다. 김주철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적극 결합하고 지원할 것”이라며 “16일 울산본부 운영위원회를 열어 투쟁계획을 세울 것이며, 지역대책위 차원의 지원을 위해 단체들과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도 이날 오후 현지를 직접 방문해 입원 중인 조합원을 만나보고 울산 중부경찰서를 방문해 강경진압에 대해 항의했다. 이 대표는 오후6시 현대차 정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대법원 판결도 이겼고 시민사회와 모든 야당의 지지가 있다”면서 “이길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싸움, 반드시 승리하자”고 밝혔다.


<고희철 기자 khc@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