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개혁 원년으로”

민주노총 ‘정세전망강연회’서 제기돼

‘GDP성장중심’에서 ‘가계중심’ 패러다임 전환도 주장

민주노총이 주최한 ‘2010년 정세전망강연회’에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병권 부원장이 “2010년을 고용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GDP성장중심의 패러다임에서 가계중심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7일(목) 교육원에서 가맹, 산하 조직 간부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0년 정세전망강연회’를 개최하고 경제, 정치, 노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정세전망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경제분야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병권 부원장이, 정치분야는 공공미디어연구소의 조준상 소장이, 노동분야는 중앙대학교 사회학과의 이병훈 교수가 맡았다.

김병권 부원장은 “정부와 기관들의 2010년 경제 전망이 화려한데,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KDI가 예측한 5.5% 성장은 세계경제가 3%의 성장을 지속해야 가능한데,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김 부원장은 “성장률을 기본으로 경제전망을 하는 것은 올해는 의미없다”고 일축하고, GDP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극복하자고 주장했다. 구조화되고 있는 양극화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삶과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부원장은 이를 위해 고용개혁, 금융규제-개혁,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김 부원장 강연록을 요약한 것이다.

* 발제문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홈페이지www.saesayon.org 참고. 「2010전망③-한국경제 : 출구전략이 아닌 구조개혁이 필요한 2010년 한국경제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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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기관들의 2010년 경제 전망이 화려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4.3%, KDI는 5.5% 성장을 전망하고 있고, 정부는 5% 내외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2년이 지났는데, 5% 성장은 상당히 획기적이고 높은 수치다. 이런 목표는 금융위기 이전 참여정부의 마지막 3년치 평균과 비슷한 것이다. 성장률 목표치만 본다면 정부와 기관들이 금융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08년도 성장률이 2%고 2009년도 성장률 추정치는 0.2%정도이니 올해 5% 성장하더라도 3년 평균치는 참여정부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이명박정부가 집권초기 제시한 7% 성장과도 간극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성장률은 아니긴 하지만, 2009년도의 낮은 성장률에 대한 기저효과에 불과하다.

정부와 보수진영은 성장률 전망을 높게 보려는 경향이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성장률을 2~3%로 수준으로 낮게 전망하는게 진보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경제 성장지표 전망을 낙관적으로 하든 비관적으로 하든 큰 의미가 없는 시점이다. 확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경기가 상승 추세로 갈 요인과 하락으로 빠질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관들의 전망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들도 이런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있다. 성장률을 기본으로 경제정세를 바라보는 것은 올해는 의미없는 추정일 뿐이다. 2010년 한국경제를 전망하는데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시장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가

경제가 상승할 가능성과 추락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정부와 기관들이 추세적인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경기흐름이 수평적으로 올해까지 연장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큰 변동없이 올해까지 이어지길 바라겠지만 기대가 꺾일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위험요소가 상존한다. IMF는 글로벌 경제가 3.1% 성장할 것으로, OECD는 3.3% 성장할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경제는 4~5% 성장한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세계 경제가 3% 성장해야 그 수준에 맞는 수출회복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두바이 말고도 도처에 지뢰가 깔려 있다. 작년 120여 개 이상의 미국 중소형 은행이 도산한데 이어 상업용부동산 부실 가능성이 높고,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도 위험하다. 동유럽의 국가채무는 서유럽 은행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 아시아의 경우, 작년에 다른 대륙에 비해 좋은 조건이었는데, 달러캐리트레이드 덕분이었다. 올해는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부동산, 주식시장의 거품이 우려된다. 달러캐리트레이드가 청산되고 자금이 유출될 경우 거품붕괴는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런 여러 악조건 중에서 한 두 개만 터져도 세계경제가 정상궤도에서 이탈할 것이고 한국의 수출 역시 정부의 바램대로 두 자리 수 성장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둘째, 국내경제도 마찬가지다. 5% 성장하려면 국제유가, 환율, 내수, 소비, 주가 등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 한다. 기관들은 유가가 작년 60달러에서 많아봐야 10~20달러 오르더라도 충격없이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도 대략 1000~1200원 선에서 안정적 하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본다. 작년 하반기 추세가 완만하게 올해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바램이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난 2년의 수치를 보면, 국제유가는 최저 30달러에서 140달러까지 변동폭이 엄청났다. 환율은 이명박정부 집권 초기 920원 선에서 2008년 12월에 1500원까지 올랐다. 올해 이런 현상이 없다는 전망은 과연 합리적인가?

과거 경험을 보면, 기관들의 전망과 실제 경기는 차이가 있었다. 2004년과 2005년에 안정적일 때는 전망과 실체의 오차가 0.2~0.3% 정도였지만, 2003년 카드대란과 2008~09년 때는 적으면 2%, 많으면 4% 정도 오차가 있었다. 전망치 오차가 0.5%를 넘어가면 전망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것이다. 그런 전망은 하나마나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제가 올해도 상당히 ‘불확실’하다는 것은 ‘확실’한데, 우리가 고민할 것은 성장률이 아니고, 도대체 어떤 요인 때문인가, 그런 요인들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 등이다. 어째서 경제성장을 전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는가. 경기 변동기에는 불가피한 경제의 내제적 특성인가. 그렇지 않다. 경제 역시 사람들이 행하는 생활과 사회적 활동의 산물이며 당연히 경제활동 주체인 사람들의 예측범위와 통제 범이 안에 들어와야 한다. 불확실한 경제현상이 사람들의 활동을 지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의 주요한 결과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장이 사람들의 기대화 달리 전혀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향없는 MB노믹스, 말잔치로 끝날 출구전략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정부의 움직임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V자 회복은 정부 움직임 덕분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작년에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경제성장률이 -1.3%였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올해는 어떤가.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발을 빼면 경기가 다시 무너지게 된다. 왜 그런가. 작년 12월까지 회복추세를 만든 것은 시장의 합리적인 작동기능이 아니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공해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정부가 철수하면 회복추세 꺾일 것이다. 연말에 예산안을 강행처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부는 예산의 60%를 상반기에 쓰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바램대로 추세가 이어질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V자 회복곡선이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둔화되고 있다. 제조업가동률은 11월부터 80%를 하회하고 있다. 물론 성장률은 전년대비 잘 나올 수도 있지만 전분기 대비하면 좋은 수치가 나올 가능성 적다.

더 중요한 점은, 올해 지자체 선거까지는 정부가 개입해서 회복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6월 이후 이명박 집권 턴어라운드가 되는데, 집권 후반기에 어찌될지 심히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노선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70년대식 개발주의, ‘747 공약’으로 대표되는 성장주의를 조합한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액면 그대로 추진하기도 어려워졌고 경제추락을 막고자 도입한 ‘응급조치용 국가자본주의’는 일각에서 ‘신관치경제’라는 우려를 낳을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 그 실체가 불분명한 ‘녹색 성장’까지 들고 나와 4대강 사업마저 녹색성장 사업으로 포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MB노믹스의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종잡기가 매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일관성을 상실한 MB노믹스는 정부로 하여금 집권 후반기의 성장 동력 확충과 경제구조 개편을 어렵게 하는 동시에, 단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불한 재정 부담을 떠안게 되면서 한국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이른바 ‘출구전략’의 향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출구전략 논의는 경기가 바닥을 찍고 반전을 시작하던 2009년 2분기부터 이미 글로벌 이슈로 떠올랐으며, 한국에서도 출구전략 시점을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런데 무성한 논의에 비해 무엇을 출구전략으로 볼 것인지, 그 시점은 언제이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통일된 기준이 없다. 금리인상만 해도 시장에서는 대략 3%로 올릴 것으로 보고 있는데, 위기 이전에는 5%였다는 걸 상기해 보라. 결국, ‘위기의 종료’를 명시적으로 말해줄 출구전략은, 말잔치만 계속 난무하는 가운데 실제로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2010년 내내 예측 불가능한 상황적인 요인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출구전략 아닌 출구전략 정책들이 뒤섞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논의에 진보진영이 갑론을박 할 필요는 없다.

GDP성장 중심 패러다임의 한계를 넘어서

작년 경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격차다. 이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이런 격차는 정부가 외형적인 실적을 올리기 위해 실적주의 정책을 편 결과다. 문제는 이런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격차가 올해 상반기 이후에 구조화되면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장률 전망이 큰 의미 없다. 성장률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수출도 플러스로 전환되고 주가는 50%이상 급등했으며 민간소비조차도 마이너스를 벗어나고 있지만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경제 지표가 바로 국민들의 가계 소득지표다. 가계 소득의 핵심 원천인 고용지표도 정부가 30만개 이상의 단기 일자리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7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GDP가 성장하고 기업 실적이 올라가고 주가가 상승하면 모든 경제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호전될 것으로 생각하는 가정은 이제 근본적으로 현재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점점 더 ‘고용없는 회복’으로 변해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장인가 분배인가’ 라는 문제 보다는 국민들의 삶과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성장 전략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한 경제 관점의 이동이 필요하다. 국민경제를 가계경제 중심으로 보자. 민주노총이 공장안에서의 임노동-자본 관계를 확대해서 가계경제와 국가, 가계경제와 은행 등의 전략을 짜길 바란다. 공장내 착취 관계를 넘어 국가 전체적인 착취관계에도 주목해주길 바란다.

지금까지 가계 경제를 희생양으로 기업과 은행, 자산시장이 팽창하고, 그 결과 외형적인 GDP가 올라갔던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적어도 3대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첫째는 가계 경제가 작동하는 시장점이자 원천이 되는 고용안정을 통한 노동소득의 안정적 상승을 위해 고용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둘째는 한국경제 최대 위협요인으로 가계 부실을 꼽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가계 대출 이자와 수수료로 수익원천을 삼고 있는 은행의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나아가 각종 위험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가계 경제를 철저하게 금융상품 의존형으로 만들어 놓은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에 대한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 셋째, 국가가 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계경제를 위해서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 특히, 이번 경제위기가 취약계층에게 집중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사회보장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가계 경제의 안정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패러다임 전환과 구조개혁은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국민들을 양국화의 함정으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해야만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2010년은 선진국 진입의 원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원년이 되어야 하며, 출구전략의 해가 아니라 구조개혁의 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