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통일을 넘어 평화를

- 베트남 평화 기행을 다녀와서

비행기가 내리니 더운 열기가 환영하듯 우리 일행을 맞는다. 더위면 어떻고, 또 때에 따라 비면 어떠하랴. 지금 우리는 베트남에 도착한 것이다. 베트남은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이름난 휴양지도 아니고, 우리가 이곳을 놀러 온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베트남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는 것에 한껏 들떠 있는 날 주체하기 힘들었다. 기껏 제주도에 몇 번 가본 바다 건너 나들이 경력이고 보면, 마흔이 넘어 외국 나들이에 들떠 있다 한들 누가 볼썽사나워 하겠는가. 들뜬 마음은 통일, 평화, 역사 이런 것 잠시 벗어 놓으려는 불순한 시도가 지탄의 대상이 될까 하는 방심을 해 보게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 입국부터 난관이었다. 일행이 짐을 찾는데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공항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이거 입국자 첫 대접이 너무 박하다. 베트남 쌀국수를 젓가락으로 몇 가닥 건져 먹고 나니 희멀건 물 뿐이다. 공항을 벗어나자, 달포 전 안녕을 고했던 그 더위가 고스란히 온몸을 감싼다. 삼복을 능가하는 더위가 안녕하며 친근한 인사말까지 나누자는 것 같다. 25~30도를 넘나든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인천 공항을 떠난 지 2시간 30여 분만에 후덥지근한 열기를 마주하게 되니 이국을 들어서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하노이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차 창가로 베트남 사람들이 한도 끝도 없이 어디론가 오토바이를 타고 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서울 종로를 처음 들어 섰을 때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오가나 했던 그런 기억. 그것보다 열배는 더, 아니 백배는 더 가득 넘치는 듯한 많은 사람들이 둘, 셋씩 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리고 있었다. 때론 멋대로, 어쩌면 나름 방향과 질서를 가지고. 그렇게 내달리는 오토바이들이 다른 여행객들도 다들 이색적으로 보였는지, 여행 내 우리를 안내했던 한국인 가이드들은 모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얘기하는 것이 여행 고객들의 질문 중에 제일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저 많은 오토바이를 탄 베트남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란다. 지금 베트남 인민들은 어디로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이번 역사 기행 중에 한 물음일 터였다.

우리는 하노이 큰 길 거리를 한참을 달려 자전거용 인력거라 할 수 있는 ‘씨클론’ 탑승 체험을 했다. 우리나라 서대문 형무소와 거의 유사한 성격의 호아루 수용소 관람이 있었다. 이채로웠다. 아니, 신기했다. 우리 나라와 같은 베트남 식민의 역사는 형무소 마저 그 성격을 같이하는가 새삼 신기하고, 그 시절 프랑스와 일본 제국주의에 시달렸던 베트남과 한국 민중들의, 조상들의 원한이 사무쳐 있는 현장을 비교해 보니 마음이 일순간 분노로 숙연해지기도 했다. 제국주의 시대를 벗어나야 했던 아시아 약소국 민중들에게 해방의 등대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도 했다. 그것이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전부였을까. 베트남은 그것이 국부 호치민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사회주의 공동체 건설이라고 정리가 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베트남 민중들이 우리는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쪽을 향해 열심히 오토바이를 몰아가고 있는 이즈음에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 가는 것 같다가도 다시 헛걸음만 반복하는 것 같은 한반도 남쪽의 상황을 되돌아 보게 했다. 다시, 유심히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호텔에 짐을 풀기 전에 몇 곳을 더 다녔다. 밥 먹으면 변소를 다녀와야 하듯 우리들에겐 짜여진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녀야 하는 코스에 지나지 않는 곳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런 곳이 몇 번 더 있긴 해도 거론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테마가 있는 기행에서는 지양해야 할 세련된 방안이 필요하다는 반성을 해 본다. 아직 우리 여행은 세련 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튿날 낮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나자,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는 몸을 억지로 끌고 호치민 영묘, 한기둥 사원, 호치민 생가, 바딘광장 등을 둘러봤다. 그중에 바딘광장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이나 중국의 천안문 광장, 서울의 광화문 광장 같은 곳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바딘 광장과 앞에서 나열했던 곳의 가장 비슷한 점은 집회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 언제부터 사회주의 국가들의 광장처럼, 사람들만 모이면 경찰들이 집회를 막는 곳이 되었을까. 헌법을 유린하며, 집회의 자유가 막힌 내 조국 대한민국이 부끄러워졌다.

오후에는 베트남 노총을 방문했다. 베트남 노동신문의 기자와 관계자 4명이 조촐하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지만, 그 어떤 환영 인파보다도 따스하게 맞이했다. 얼굴에 한 가득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비록 통역하시는 분의 입을 통해 서로의 뜻을 나누는 시간이었지만 세계 노동자는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감한다는 것에 의사 소통의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사 회주의 사회인 베트남의 노동운동에 대해서 알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 궁금한 것이 많이 생기는 기회였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베트남 노총의 역사와 베트남 조국통일 역사 투쟁의 역사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베트남 사회의 개혁 개방은 과연 노동자, 인민들의 인간해방을 여지에 두고 계산된 방향인지 하는 여러 물음 등에는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지만, 물음을 던져준 베트남 노총 관계자에 감사를 표해본다.

차를 달려 세계자연경관인 하롱베이에 도착하니 밤이 늦었다. 3일째지만 저녁으로 준비한 삼겹살이 정겹게 고향을 떠나있는 입맛을 달랜다. 소주 맛도 정겨운 밤이다. 간단하게 저녁시간을 보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볍다. 아침부터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지만 하롱베이의 섬들이 눈앞을 막아 선다. TV에서 본 그대로 병풍처럼 늘어선 섬의 바다이다. 이곳은 가히 바다 중간의 섬이 아니라 섬 간간히 있는 바다라 할만했다. 가이드는 논(nonh)이라는 베트남 전통 모자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모자 하나만을 머리에 올렸을 뿐인데 일행 모두가 베트남 사람이 된 듯하다. 재미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그대로 우리 옆에 앉는다. 일행들 모두가 나만 이방인으로 둔 채 이곳에서 베트남 인민이 되어 버린 착각을 들게 하기도 했다.

꿈길 같은 하롱베이 풍경을 구경하고, 호치민의 땅 하노이를 뒤로한 채 비행기에서 내리니 다시 호치민 시(市)다. 호치민을 떠나는가 했더니 다시 호치민 이라니. 베트남이 호치민의 머리와 마음과 열정으로 경영되어 가는 나라이니 그곳의 이름이 무어냐가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마는.

나흘째 되는 날은 호텔에서 조식을 일찍 서둘러 하고, 메콩델타 강을 구경했다. 이곳은 하롱베이가 관광지로서의 베트남 중에서도 베트남이었다면, 이곳은 베트남 인민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구역으로서 베트남 속의 베트남이라 할만 했다. 1달러의 지폐 매너 팁을 받으며 생활을 연명 하는 듯 보이면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그네들의 표정에 묻어나는 알 수 없는 넉넉함. 베트남이 분명 우리나라 보다는 저개발 국가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가 가지지 못하고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음을 본 듯 도 하고, 보지 못 한 듯도 했다. 내가 잘못 봤을까, 그네들의 눈빛 속에 있는 은근함. 귀여운 꼬마가 베트남 노래를 재미지게 부른다. 일행들 호주머니가 ‘1달러’, ‘1달러’ 검소함에서 일순간 인심 넉넉하게 해방된다.

베트남에서 마지막 날 베트남전 유적지인 구찌터널과 호치민 시내에 있는 전쟁 박물관을 관람했다.

출발이 베트남 평화기행이라는 테마로 출발했던 여로에서 만난 베트남의 여러 모습들은 우리가 처음 찾고자 했던 전쟁을 극복한 평화, 분단을 넘어선 통일, 그리고 대한민국의 길이라는 대답을 가지고 가기에는 너무 바쁜 일정이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분단을 넘어 통일을 이룬 베트남을 북에서 남으로 둘러 볼 수 있었다는 것, 베트남 노총 관계자들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담화를 나누면서 연대의 방향을 모색했다는 것, 일정을 통해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 사회 지도자들의 일생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 등은 출발부터 얘기 했듯 테마와 휴식을 겸하는 여행이라는 목적에는 나름 충실할 수 있었던 시간 이었다는 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우리는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건배를 통해, “노동기본권 사수, 노동법 재개정, 비정규직 문제해결, G20 규탄을 위한 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 사수를 위하여”하며, 함성을 질렀다는 것에서 이번 기행의 소기의 목적 달성은 다시 묻지 않아도 될듯하다.

 < 연맹 소식 펌>

* 전국농협노조 경인본부 문경순 부본부장, 임승록 지도위원, 성기전 자문위원이 평화기행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