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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1-21 13:08
도와 주세요 " 이래도 되는 겁니까"
 글쓴이 : 권재희
조회 : 2,412  
회장님께 올립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풍기농협 순흥 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복지사 권재희 입니다

15년의 농협생활을 마감하면서 채워주지 못한 점들을 가슴 아파 하면서

당돌하다고 생각 하실지 모르지만 두서없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89년 7월1일 순흥 농협 부녀부장으로 들어와서 97년에 부녀지도대상을 받았으며 2000년에 부녀지도대상 수상자 특별진급 승진발령을 받았습니다

영주시 농협이 탄생된 후 지금까지 처음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승진을 못한 채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 마음에 모아둔 사연들을 조금이나마 글로적어 보여드려야 제 마음의 아픔이 줄어들 것 같기에 글로나마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족으로는 이태리 밀라노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는 딸이 있구요 금년에 대학을 들어가는 아들이 있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단산농협 조합장으로 8년 동안 일하시다가 농촌에서 노후를 보내시고 계십니다 이름은 허정규 입니다




저희 순흥농협은 98년 5월1일에 풍기농협과 합병하였으며 합병 추진노고에 격려차로 지도부장은 1급 승진을 하였으며 부녀부장은 노고 또한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합병추진에 지뢰와 같은 부산물로 남았습니다




6.25전쟁의 부산물로 남아있는 전쟁고아처럼 그렇게 남아서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0년 3월 특별승진발령에 이어 2001년에는 규정이 바뀐다는 소식이 있어 승진에 도움을 주신 분으로부터 바뀌는 업무규정을 습득하여 비교 평가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당해 2000년도에 승진을 못한다면 불리한 부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윤상홍 총무 과장은 바뀌는 규정을 미리 알아본후 그대로를 모방하여 저에게 불리한 부분만을 글로 넣어 새로운 규정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생각에 맞도록 작성하여 이만화(전)조합장님의 신상에 불리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신 내부규정을 만들어 이사회에 통과하도록 풍기농협 자체의 내부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시작하고 있는 것을 알고난 저는 2000년 4월에 (전)이동걸 전무님께 과장이 이런 일을 시작하고 있으니 금년 안으로 승진을 시켜달라고 하였습니다

전무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특별승진 하였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오히려 저를 나무랐습니다




아버님 또한 수차례 조합장님을 만나 이야기하였지만 2000년의 시간은 기다려주지도 않고 신 규정을 이사회에 통과하여 저의 목을 걸리게 하여 결국 승진도 못한 채 아무런 열매도 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만화(전)조합장님과 아버님은 영주농고 선후배간 이었습니다




200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만화(전)조합장님은 퇴직을 하시고 지금의 구필회 조합장님이

취임을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셨던 조합장님은 현재 순흥면 시의원으로 일하고계십니다 이토록 저에게는 먹구름의 소나기가 지나가고 회오리 바람이 지나가고 태풍보다도 무서운 지진해일이 지나갔습니다

합병을 하면서 저는 이동걸(전)전무님과 함께 풍기농협 본소에서 근무를 하였으며 그후 2년이 넘도록 승진을 못하고 있으니 전무님과 저는 서로가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순흥으로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순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먼저 윤상홍 과장이 저에게 불리하도록 규정을 바뀌게 한 이유를 적어 보겠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며 살던중 아버님께 다니러 왔다가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후 아이들을 키워야겠다는 각오로 그날이후 아버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들은 뭇 남성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유로이 건드릴 수있는 길 바닥에 널려진 상품으로 알고있는 것이 지금의 사회의 실정인 것입니다




본인의 뜻에 흡족함을 얻지 못한 윤상홍과장은 이런 저런 방법을 총동원하여 편지까지 보내왔으며 저는 그 편지를 증거라도 남기려고 신용과장과 여직원 2명에게 얘기를 한 후 읽어보았습니다

보여 달라는 여직원의 성화를 뿌리치며 과장의 인격이 있지 어떻게 너들에게 보여주겠느냐고 하면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저에게는 사사건건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업무적인 모든 일들로 하여금 도마 위에 오른 고기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움과 불평 그리고 견딜 수 없는 과장의 헛된 소문으로 깊은 낭떠러지에 추락에 추락을 더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과장은 본인의 승진 서류를 본인의 손으로 3급 총무 상무로 승진을 하였습니다

본인이 공판장에 근무 할 때 끼친 사과매매 손해액에 대한 것은 조금도 미안한 느낌도 없이 말입니다

더이상의 문제점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으아한 분위기 속에서 조합장으로부터 총애 받는 직원이기에 어느 누구도 말한마디 못한 채 책임자한테 기백만원의 금액으로 과장급 이상의 책임자들이 대납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농협으로부터 옮겨보라는 권유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사업업적이 있는 곳에서 승진발령을 받아서 다른 곳으로 가야 인정을 받을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경북 지도대상수상자 모임의 총무로서 감사로서 일하였으며 경북, 전국협의회에서는 수차례 사례발표 및 장기자랑 등으로 활동 분야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분들로부터 너는 왜 ? 승진이 안되느냐고 물었습니다  회의를 갈때마다 들어야하는 인사는 나의가슴에 비수로  꼽혔던 지난 5년의 세월은 죽을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대변을 하였습니다

지난 1년동안은 회의와 모임에 전혀 가지 않았습니다.




2년 3년 5년이 지난후 이제는 대변을 할수 있는 말이 끝이나 버렸습니다  마음의 괴로움이 이제는 스트레스성 당뇨병으로 진단되어 병원에 다니며 약을먹고 치료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이상 근무를 하다보면 주위에 앞서 죽어가는 농협직원들을 뒤따라갈것 같기에 사직서를 내었습니다




농협을 다니는 동안 성악공부를 하였으며 지금은 사무실이 시키는한 영주시 행사에 노래 봉사자로 일하고 있으며 농민신문사주최 문인화 부문에도 수차례 입선을 하였으며 지역주민에게 가훈 써주기를 추진하여 영주시장으로부터 문화발전에 공헌한 시민상으로 표창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수년동안 사무실 업적평가 개인실적으로도 1등을 하고있으며 저의 개인 실적이높아 사무실 업적평가에서 1등도 하였습니다

금년에도 또한 일등을 하였습니다

지난 2003년과 2004년에는 농작물재해보험을 추진하여 우리농협3개의사무실 중에 1등을 하였으며 저에게 돌아온 장관상을 다를 직원에게 물려주었으며 호주행 해외여행은 우리사무소 지소장님을 추대하여 보내 드렸습니다




중앙회장상은 업적평가1등으로 수차례 받았습니다만 장관상은 한번도 받은적이 없습니다

승진을 앞둔 남자직원들에게 우선권이 돌아가는 것이지, 여직원에게는 어림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를 두번째 죽인 사건은 여기 있습니다

지난 2004년 3월에 본소 복지과장이 퇴직을 하였으며 봉협지점 부녀부장과 순흥지점에 부녀부장인 저는 동대 45세 나이로 같은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지 서동석전무께 총애를 받았다는 이유 한가지로 봉현부장은 승진이 되었으며 저는 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약이라도 먹고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총무과장께 무슨 차이로 시켜주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이러하였습니다

경력부족으로 안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봉현부장의 경력은 부석에서 부석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쇄점 판매원으로 입사하여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근무를 하였다는 이유였습니다




저의 자격으로는 부녀부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주산3급, 부기3급, 펜글씨 2급, 꽃꽂이 사범, 사회복지사, 레크레이션 2급이며 경력으로는 무역회사 3년, 보건복지부 허가 유아원 경영이 있습니다. 부녀부장으로서 지도 대상을 받으려면 자격증 3개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서류를 올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농협생활 시작과 함께 지도사업으로는 경북에서도 2등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입사 만9년이 되어야 특진이 된다고 하여 7년만에 전국 지도대상수상을 하였으며 1999년에 특진서류를 올렸던 것 이었습니다




그동안 영주 경북전문대학 야간에서 행정과를 졸업하였고 학점은행제 대학에 등록하여 대구 계명대학교와 카톨릭대학교를 야간과 토요일을 활용하여 성악을 공부하였습니다.  지난 95년 중국에서 개최한 세계여성 대회에 여성사회학회 평생회원으로서 또한 농협 직원으로서는 저와 영주 농협 (전)부녀부장 김연식 씨와 같이 60명을 데리고 가는 팀장으로서 그나마 옛날에 무역회사를 다녔던 경험으로 깡통 영어를 하며 풍물놀이로 꽹가리도 치고 노래도 부르며 한국의 명성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지금에 와서 조합장님께서 농민 후계자 총회에 나오셔서 제게 하시는 말씀이 합법적으로는 할수 없다, 그러면 차후에 조합장님 신상에 어떤 문제가 발생되더라도 조합장 명의로 과장 이름만 바꾸어 퇴직을 하도록 해주겠으니 오늘(1월 19일)중 으로 전화를 달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내려온 승진 발령을 조합장 명의로 받아 나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데 우는 아이 젖 주기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지금 바라는 것은 조합장님께서 연세많으신 시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저에게 약속하신 2004년 3월 승진 시켜서 퇴직해 달라는 것입니다.

농협은 조합장이 바뀌면 농협 법도 따라 바뀌는 것입니까? 그리고 더 억울한 것이 있습니다.



2004년 3월에 퇴직한 본소에 근무하던 (전)이명희 여성 복지과장이 퇴직을 할때 에는 퇴직 몇일 앞두고 3급 상무로 승진을 시켜서 전 직원이 모여 퇴임식을 하여 보내 드렸습니다. 



저에게는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그동안 아이들은 이만큼 자라서 어머니의 승진에 목표를 두고 지금도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수첩 맨 위에는 2005년도 목표는 엄마의 승진이라고 크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기고 지고가 아닙니다.




5년의 긴 세월동안 무너지고 짓밟힌 제가 지금 무엇을 바라기 위함입니까, 인간 본연의 도리를 상실한 책임자들의 책임 회피가 미워서 입니다.

과부가 된 여인에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직원 한 사람도 마지막 가는 길에 소원이라도 들어보려고 물어보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있어도 다른 직원들한테 과부랑 잘 나간다고 지적될 까봐서 이겠지요.




저는 직원들께 마음을 다하며 살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오른손이 일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귀절에 합당치는 않으나 제가 마음을 담아왔던 지난날들을 기록해 보겠습니다.




저는 퇴근을 하고 꽃꽃이 사범교육을 일주일에 한번씩 받고 있습니다.

매 주일 배운 것은 사무실에 꽂아 놓는 것이 나의 기쁨이기에 사무실에서는 재료비도 받지 않고 환경을 가꾸고 또 가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사먹는 밥이 좋지 않아 직원들을 위하여 숙직실에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점심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외부에 나가 먹는 점심 약속이 있어도 사무실 점심을 해 놓고 가는 것이 나의 생활 이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과부에게 돌을 던지는 자 누구십니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는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라고 확신합니다.

돌을 던져달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이렇게, 삭막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또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정의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조합원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아픔을 줄 수 있겠습니까

주홍글씨를 가슴에 안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누구십니까?  그것도 모자라 승진을 시킨 다음날에 신용과장 발령을 내어 아침 일찍 각지소로 팩스를 보내왔으며 오후 5시가 되니 취소한다고 팩스가 왔습니다




한 사람은 날개를 달아 하늘로 날아 보내고

또 한 사람은 진흙 구덩이에 몰아넣고도 안되어 목을 짙누르는 상황이지 무엇이겠습니까?




남편이 없는 여자는 이렇게 무시당하며 살아야 합니까?

이것도 자격지심입니까?

법으로 한다면 무슨 법이 없겠습니까?




너무도 억울하여 서울법원에 과장으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뼈아픈 지난5년 동안에 받은 설움을 되돌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안동 법원에 계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소비자보호원으로 신청한 순흥 조합원들께 수박밭 매매건과 사과대금 등 받지못하는 사건들을 여러 건 해결해 주었던 친구입니다




저의 사무실에 와서 현장을 보고 간적도 있으며 저의 아픔또한 너무 많은것을 알고 있으며 저의 일 앞에는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친구입니다




부녀부장의 활동은 곧 농협의 사업으로 이어져 가는 것은 누구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농협에 근무하는 동안 농협에서 근무하여 안동지방 MBC방송국에서 지방가수로 약 5년동안 활동하였으며, 경북 지방 사투리 경연대회에서도 입상을 하여 경북 지역 행사마다 참여 하였으며, 




영주 시청 행사시에도 노래봉사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해 왔습니다.

저의 시간에 맞추어 밤에 하는 행사도 많았습니다




경북 농협 김치 한마당 축제에서는 3차례 입상 하였으며, 영주시 최초로 여성 풍물단을 만들어 영주시 농악 경연대회에서도 3번 이상 입상을 한 후 초대받아 공연을 보여주는 풍물단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이 맺힌 저는 퇴직을 하면서 모든것을 풀고 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승진을 시켜 보내달라고 총무과장님을 만나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는 할수있겠다는 가능성으로 답을 해주셨습니다.

단지 저에게 남은 겨자씨 알만한 작은 불씨가 또 다른 화를 불러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서 입니다.




그동안 (전)이동걸 전무님을 통해 화해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제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습니다. 비워진 마음을 다시 채우는 것은 퇴직을 하고 난 후 나와 같은 여자와 부족한 분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면서 하나 둘 차곡차곡 메꾸며 살아가리라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독교 중창단으로 지난 농협생활과 같은 세월동안 농촌교회 복음 선교 활동으로 월 2회씩 일요일마다 15년간 노래하며 살았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회피하고 있는 농협 책임자들의 언행 앞에 인자하신 아버님과 남편없이 살아가는 한 여인은 비인간적인 횡포에 떠밀려 이대로 죽어가기엔 너무나 억울합니다




법의 힘으로 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겠습니다.

인간 이하의 동물적인 농협 규정이 있다면 지금 바꾸어 주십시요.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리고, 2000년도에 특진한 서류를 되돌려 주십시요.

특별 승진을 반환하겠습니다.

소백산 산골 여인의 어거지라고 하실테지요.

농협 규정에 없다고 하실테지요.

하늘이 내려다보고 땅이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생명 산업인 농업, 농촌, 그리고 땅을 지키겠다는 농협인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어디에 가서 어떻게 고해야 되겠습니까?

우체국으로 가야 합니까, 시청으로 가야 합니까, 청와대로 가야 합니까?

길을 가르켜 주십시요.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조합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영주시 인사관리 위원회에서 자리가 없다면서 합법적으로는 승진을 시켜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영주시 인사 관리 위원회에서는 풍기농협에서 올리기만 한다면 시켜 주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마지막 앙금이라도 풀고 가고 싶어 승진을 시켜서 퇴직을 시켜달라고 하였더니 시지부 인사관리 위원회에서는 규정에 합당치 않는 일이라서 안된다고 하였다 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2003년도 12월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겠습니다.

봉현 부녀부장이 승진이 된 다음 12월에 아픈 마음을  들고 조합장님을 찾아가기로 생각을 하고 퇴근을 하고 8천원으로 음료수를 사서 먼저 사모님의 사업장인 내의 가게로 갔습니다.

조합장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확인을 한 후 조합장님 댁으로 찾아 갔습니다.  조합장님과 처남이신 아저씨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울면서 애원을 하였습니다.

조합장님을 도와 드리면서 열심히 일을 할 테니 승진해 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조합장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년 2004년 3월에 꼭 승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집을 나왔습니다.




다음날 시아버님께 울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3월초에 승진을 해서 퇴직을 한 후 딸아이와 함께 4월에 외국에 가서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저도 모르게 조합장님을 찾아가셔서 울면서, 통곡을 하며 약속을 받았다는 얘기를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순흥 조합원으로부터 들었습니다.




3월이 다가왔습니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퇴직을 하려고 하는데 서울에 사시는 친정 5촌 아지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영주 지역에 이영탁 (전)장관 아재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니, 도와달라고 하는 얘기였습니다.

1년만 참으라는 말 이였습니다.

어찌 할 수 없이 머물러 앉았습니다. 그 결과,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냥 이대로 농협을 뒤로한 채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5년이란 긴 세월동안 비바람에 치였다가 명예 퇴직이라는 단어 앞에 그나마 목숨만 살아남아 있어서 죽어가는 개에게 빵 한 조각 던져주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가슴속에 앙금을 지우려는 마음이 전부였습니다.  퇴직을 한다는 것을 알고난 직원들은 위로의 전화가 빗발 치지만 과장 이상의 책임자들은 지금까지 단 한명도 위로의 전화 한 통화도 없었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한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회장님의 명의로 내려주신 승진 발령, 특별승진을 회장님께 다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승진 때문에 신경을 쓴 결과 1년 만에 5kg가 늘면서 스트레스성 당뇨병에 걸려 눈이 나빠지고 치아가 내려앉고 위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승진 때문에 얻은 병은 누가 책임져 주겠습니까?

이것도 농협규정에 없다고 얘기 하시겠습니까?

농협 규정에 없다면 대한민국 헌법에 호소해야 합니까?

아니면, 이대로 죽어야 합니까?




먼저, 순흥면 조합원들께 호소하겠습니다.

영주시에 시민된 한사람으로써 영주 시민들께 애원 하겠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대통령께 도와달라고 목소리 높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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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고, 돈 없는, 이 과부를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