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핵무기 개발 국가로 지목, IAEA 사찰을 받지 않으면 대 이란 전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분위기인 미국 정부 강경파들이 불과 30년 전에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적극 지원했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27일 "과거의 논쟁은 현재 이란 정책과 전혀 무관"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부장관 등 현재 대 이란 강경책을 주도하는 인사들이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럼스펠드, 체니)과 군비통제군축국 비확산 책임자(울포위츠)로 있으면서 이란의 핵 에너지 개발을 승인하고 적극 지원했었다고 폭로했다.

△기사가 보도된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

이같은 내용은 최근 미국 정부가 당시 포드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서를 기밀해제하면서 밝혀진 것이다.

30년전 미정부 이란에 대규모 핵시설 지원...플루토늄·농축우라늄도 팍팍

포드 행정부는 당시 이란의 에너지 공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규모 핵에너지 산업을 적극 후원하면서, 이란에 핵무기 제조로 직결될 수 있는 다량의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을 넘겨주었다.

포드 행정부의 국가안보팀은 당시 "15년 후면 이란의 석유 생산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이란 정부의 주장과 똑같은 논리로 팔레비 국왕 시절 이란의 대규모 핵에너지 산업 추진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고 포스트는 전했다.

이후 제럴드 R. 포드 대통령은 1976년 이란이 핵 재처리 연료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미국은 이에따라 웨스팅 하우스나 제네럴 일렉트릭과 같은 미국 기업들의 이란 현지 진출 및 핵 시설 상담을 적극 지원했다.

이같은 사실은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1975년 서명, 회람시킨 '국가안보결정메모 292호'에 상세히 나와있다.

"미국-이란 핵협력"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문서에서 포드 행정부는 "이란의 핵발전 사업은 이란 경제의 점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부응하는 한편, 여분의 석유 자원을 수출이나 석유화학산업에 전용토록 해줄 것"이라며 이란 핵 개발을 적극 지지했다.

이 문서에는 이란에 핵에너지 설비를 판매할 경우, 미국 기업에 6십억 달러 이상의 이익이 돌아온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 기업과 이란 정부간 상담 결과 미국 업체가 64억달러 규모의 원자로 6-8기와 부품을 공급하겠다는 내용, 또 미국의 민간 우라늄 고농축 회사가 이란에 우라늄을 공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란이 이 회사 지분 20%에 1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 핵개발 지원은 1979년 이란 혁명에 이은 미국인 인질사건으로 인해 돌연 중단되고 말았다. 이 일만 없었다면 이란은 미국 정부가 지원한 미국 기업의 핵시설을 통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대량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포스트는 설명했다.

"이란 핵 지원" 서명한 키신저, 이젠 "에너지 충분한 이란에 무슨 핵이냐" 주장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현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해 금지하는 바로 그것이다. 30년전 이란은 미국의 우방이었지만 팔레비 정권이 무너지고 상황이 바뀌자 미국은 한입으로 완전히 다른 두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딕 체니 부통령은 최근 이란 핵과 관련, "이미 석유와 가스가 충분한 이란이 왜 에너지 때문에 핵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체니를 비롯, 현재 이란에 핵 무기가 있는지 명확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핵무기 보유'를 이유로 이란에 다방면으로 위협을 가하고 있는 미국 행정부들의 핵심인사들은 30년 전만 해도 완전히 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75년 '국가안보결정메모 292'에 서명한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 9일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이란과 같은 석유 생산 대국에 핵에너지는 자원 낭비"라고 주장했다.

키신저는 포스트가 전화를 통해 이 모순에 대해 묻자, "당시 이란에 대한 지원이 핵 확산으로 나아가리라고 생각지는 못했다"며 얼버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란에 석유자원 부족"이라는 30년 전 미국 정부의 판단이나 "이제는 석유와 가스가 충분하다"는 최근 미 정부 인사들의 발언이나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30년 전 당시 하루에 6백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던 이란은 현재 평균 일 4백만 배럴 수준의 생산에 그치고 있어 미국 정부의 판단과 상황이 완전히 반대이다.

결국 문제는 이란의 석유 자원이 얼마나 충분하냐 부족하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셈이다. 문제는 오직 미국의 눈에 이란이 곱냐 밉냐의 여부일 뿐이고, 미 군국주의 산업이 또다시 새로운 안보위협이나 전쟁을 일으켜 이익을 볼 수 있느냐의 여부일 뿐이다.

2005년03월28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