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북측에 '조건없는 회담 테이블 복귀'를 촉구해 왔던 미국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북한의 2.10 핵보유 선언 이후 악의적 무시 혹은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론적 대응을 보여왔던 기존의 미국의 태도가 강경 기류로 변화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23일 방한한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수석대표는 공항에서 북측의 회담불참이 계속될 경우, 다른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음을 내비칠 수 있다고 운을 땐 이후, 25일 잇따른 정부 외교라인과의 접촉에서는 6자회담 재개와 북핵문제의 '실질 진전을 위한 방안', '최선의 전술' 등에 대해 집중 협의했다.

정부 당국자는 "지금까지 한미 협의가 회담 재개방안 논의에 80% 가량의 비중이 실렸다면, 이날은 대북 압박 논의의 비중이 50%를 차지했다"라며 "(6자회담 전망에 대해) 긍정적일지 아닐지 평가를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라고 그 분위기를 전했다.

힐 수석대표가 갖고 온 '실질 진전을 위한 방안'에는 6자회담 외 '다른 방안'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만, 정부당국자는 "다른 방안이라는 것이 여러 외교 방법 중 하나가 있고 그 영역 내에서 다른 방법도, 압력도 있지만, 자동적으로 압박과 제재로 연결시켜서는 안된다"라며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미국의 인내심 한계?... 미국 스스로 6자회담 재개 입구 막고 있어

미국의 이러한 강경기조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들은 "미국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 동안 미국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해왔던 남한 정부마저도 이를 '이해'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지적대로 미국의 강경기류는 과연 인내심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일까. 한계라 함은 미국이 정해 놓은 레드라인(red line)을 의미하는데, 북한이 미국의 레드라인을 넘은 것은 '6자회담 불참'이 아니라 지난 2월 핵보유 선언이었다. 북의 핵보유 선언은 기존의 '동결 대 보상'이라는 회담 주제 자체를 무력화시킨 조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 선언에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라며 애써 무시해 오다가 최근 들어 6자회담 지연의 책임을 이유로 유엔 안보리 회부, 또 다른 조치 등의 강경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한 적이 없다. 다만, 6자회담을 통한 실질적 문제해결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한 조건 성숙을 요구해 왔을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라이스 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이며, 이는 곧 북이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체제보장을 위한 미국의 정책 변화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 1부상은 미국의 '체면'을 고려, 비공식적 접촉을 통해서라도 미국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시종일관 '모든 가능성은 6자회담 재개 후 논의해야 한다'며 북한에 '조건없는 6자회담 복귀'를 고수, 북한에게 회담 복귀의 명분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6자회담 지연의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에게 떠넘기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기존의 '핵동결 대 보상'이라는 대립 명분이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사실상 무의미해지자, 6자회담에 대한 '조건 마련 대 무조건 복귀'라는 새로운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된다.

6월 시한 앞두고 강경 정책 본격화하는 미국

그렇다면 미국은 6자회담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변하면서 최근에 와서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며 동북아의 긴장을 높이고 있을까.

사실,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는 이미 지난 3월 라이스 장관의 동북아 순방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3월 18일자 <교도통신>은 “미국 정부는 3월초 한-중-일 3국에 18일부터 시작되는 라이스 장관의 방문 이후에도 북한이 계속해서 6자회담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대북 압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통보했다”고 보도했었다.

당시,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는 중국의 반대에 부딪혀 본격화되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은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 검토 등 조금씩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북한도 미국의 압박에 맞서 “핵무기고를 더 늘리는 중대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힌 데 이어 미국 전문가의 평양 방문 자리에서 영변의 5MW 원자로를 중단시켰음을 공식화했다.

따라서, 라이스 장관의 한중일 순방이 있은 지 한 달만에 재개되는 힐 차관보의 순방은 지난 한 달 동안 미국이 국제사회에 '참을 만큼 참았다'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판단을 한 결과이며, 이를 바탕으로 관련국들, 특히 중국에게 대북 압박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이처럼 강경기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6자회담의 6월 시한론의 실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한중일 3국 순방 이후 대두된 6월 시한론은 한미 정부 당국자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적어도 ‘심리적 시한’이라는 것에는 정부 당국자도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6자회담 재개를 앞둔 샅바 싸움으로 비춰지는 현재의 북미 대립 구도는 사실상, 남한 및 중국 정부의 비협조로 특별한 대북 압박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던 미국의 초조함이 드러난 결과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이 '조건없는 회담 복귀'만을 되풀이 하는 동안 핵보유 선언에 이은 핵 증강조치 발표를 했다. 미국으로서는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실험, 그리고 핵 기술의 제 3국 유출 가능성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모든 국가들에게 핵 물질이나 다른 부품을 적재하고 북한을 드나드는 선박과 항공기를 봉쇄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유엔 결의안을 추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 뉴욕 타임스가 25일자 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흔들리는 한국 정부, 미국의 제동 장치 약화 초래...한반도 위기 올 수도

어쨌든, 지난 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동북아 순방에서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강경 기조는 최근 국내외에서 일고 있는 북핵 문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6월 시한설 등과 맞물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북 제재 방침에 시종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던 한국 정부가 최근 힐 차관보의 방한으로 흔들린다는 것은 뜻하지 않게 한반도 위기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한국 정부의 흔들림은 그동안 북한의 입장을 암묵적으로 두둔하면서 미국의 강경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던 중국의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을 앞두고 미국의 대북압박 입장을 전적으로 받을 수는 없겠지만, 중국이 단독으로 미국에 맞서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강경기조 호응, 중국은 기다려봐야 / 임은경 기자 북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나올 듯 / 장상종 기자

2005년04월27일 ⓒ민중의 소리